꽤나 유명한 책이다. 광고였던가 어떤 미디어에서였던가, 이 책이 좀 자주 보여서 그리 대단하면 한 번 읽어보자 싶었다. 도입부의 저자의 말이나 역자의 말부터 이 책이 수작 내지는 명서임을 자부하길래 시작부터 기대하면서 읽었다.
기본적으로 내용은 제목에 충실하다. 부호라는 것에 대한 이해에서 내용이 시작한다. 우리는 부호를 통해 어떠한 내용을 표현, 기록, 독해할 수 있다. 이러한 부호가 기술 발전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어떤 도구 위에 어떤식으로 표현되었는가, 시대마다 어떤 규칙의 부호가 주류였는가, 그리고 종래에는 현대 기술에 어떻게 이르렀는가까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전자공학과가 아님에도 일반물리나 고등학교 물리 수준에 전자기학 이해도가 있다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원시 컴퓨터를 이해할 수 있다. 릴레이에서부터 트랜지스터, 반도체까지.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본질은 회로이다. 회로를 어떤식으로 구현하면 특정한 기능을 하는 컴포넌트가 된다. 다시 이 부분부분들이 모여 연산장치, 메모리, 디스플레이 장치 등이 탄생한다. 이들이 조합되어 컴퓨터가 완성되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솔직히 요즘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도 임베디드를 공부하지 않는 이상 이런 수준의 내용을 공부하기가 쉬운 게 아니다. 저수준보다는 고수준의 내용들을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교과서 같지 않고 친절히 설명하듯 스토리텔링해주는 이 책의 매력이 더 부각된다. 군대에서 점심시간, 매일 밤 연등 시간 등에 한두 시간씩 읽었음에도 잘 읽혔다. 바쁜 사람도 평범한 책 읽듯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비록 정석적인 컴퓨터공학, 전자공학의 코스를 밟지 않았으나 나름 독학하거나 주워들은 부분이 많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디테일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으나 대략적으로 기계어는 무엇인지, 폰노이만 구조는 무엇인지, 컴퓨터 과학의 기본적인 지식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생 초보자가 읽을 만한 책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 입문자가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하고 넘어가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컴퓨터의 구동 원리(물리적 수준부터 OS 수준까지)를 아주 대략적으로라도 배워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추천한다. 아닌 경우 조금 더 집중하며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