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정말 지겹게 들은 얘기같습니다. 사회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뭐... 동의합니다. 한 가지 분야 1인분하기도 어려운데, 두 가지 분야에서 1인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이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던 말이 회사를 다니면서 직접 와닿게 되었습니다.
융합형 인재는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맞습니다. 제게 이 말은 피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은 '융합형 인재는 다른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였습니다.
예시를 한 번 들어봅시다.
개발사들에게 솔루션을 판매하는 B2B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솔루션은 SDK, API, 라이브러리 따위의 형태로 제공됩니다.
마케터가 개발자에게 요구합니다.
"주 고객군이 개발자이니까 홈페이지에 처음 시작할 때 쓰는 코드 등을 보여줍시다."
마케터는 우리 제품이 이렇게 쓰기 편하다 혹은 이런 장점이 있다를 선전해야 하는 입장에서 소스 코드를 보여주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런 요구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개발자는
"음,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코드라... 우리 제품이 초기 설정하기가 매우 간단하지! Initialization 관련해서 짧은 코드를 넘겨줘야 겠다"
면서 소스코드를 슬랙으로 복붙해서 보냅니다.
마케터는 그저 그 소스코드가 개발자(고객)로 하여금 "이 제품 좋아보이네"라고 생각할 것이라 믿고 그대로 홈페이지에 올려버립니다.
하지만 초기화 코드라니요. 제품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함축적으로 꾹꾹 담아내어 Aha Moment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의 소스코드를 보여주기는 커녕 개발자 조차도 "이게 뭐지"싶은 코드였던 겁니다.
마케터는 코드의 의미를 해석할 줄 몰랐고, 개발자는 홈페이지에 등록되는 소스코드의 '의미'를 몰랐던 겁니다.
코드를 대략적으로라도 해석할 줄 마케터나, 홈페이지에 올라간 소스코드를 보고 절망할 줄 아는 개발자가 있었다면 조속히 이 문제를 발견하고 마케팅적으로 우수한 소스코드를 만들어 올렸겠죠.
의외로 그런 맥락과 소스코드를 만들어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해낸다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를 발견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차라리 다른 미디어로 대체하면 그만이니까요. 문제의 인식이 핵심입니다.
이런 유사한 상황을 겪으면서 저는 "이래서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개발자는 단순히 공학자이기만 해서는 안되며, 마케터 역시도 제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