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병 본인선택원'이라는 제도로 입대한 필자는 개같이 보병, 포병, 공병 따위의 보직을 받을 걸 예상했습니다. 기술행정병이라는 제도가 있긴 했는데 그냥 빠르게 군 문제를 해결하고팠습니다.
그렇게 2월에 입대해서 논산 훈련소에서 5주를 버텨 자대 배치 서류를 받았습니다. 어느 사단을 깔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서류를 봤는데 "123.102 / 장갑차정비 / 상무대 / 육군기계화학교" 따위의 키워드가 보이는 겁니다.
ㅔ...?ㅔㅔ?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기계화학교는 뭐고... 장갑차정비? 보통 소총수 하는 거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띠용한 상태로 전라도 장성의 상무대, 육군기계화학교에 갔습니다. 그 순간부터 필자는 '1중대 170번 훈련병'이 아니라 'K200장갑차 부대정비병 22-x기 x번 교육생'이라는 긴 이름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갔더니 조교들도 나름 잘 해주고, PX도 잘 갈 수 있고, 밥도 초임 하사, 초군반 소위들이랑 같은 걸 먹다보니 질이 좋았고, 생활관 구성원도 전부 이등병들이라 살 만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교관이라는 사람이 와서 수업을 합니다.
거기서 이 친구를 처음 만났습니다. K200이라는 궤도 차량입니다.
오오.. 신기 방기. 수업은 나름 충실히 재밌게 들었습니다. 교관이 기갑병과는 3보 이상 차량 탑승이다. 행군 안한다. 총도 K2가 아니라 K1 줄 거다 등등의 감언이설을 뱉습니다. 중간에 이거 좀 이상한 보직이다 싶어서 퇴교하고 그냥 최전방 보병으로 배출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장갑차라는 물건이 재밌어 보여서 버텼습니다. 저는, 뼈에 사무치도록 그 때 퇴교하지 않은 선택을 후회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전역할 때까지 후회할 것입니다.
자대는 어디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기계화된 부대라면 어느 부대든 갈 수 있습니다. 특별히 기갑병과라고 기갑여단, 기계화사단 등에만 배속되지 않습니다.(주로 그런 곳으로 가기는 합니다.) 저는 정비대대나 기갑여단은 아니고 그냥 기계화된 부대로 배속받았습니다.
여기서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운 안좋게 병사들에게 좋게 해주지 않는 지휘관이나 행보관을 만나는 게 아니라면 군인의 삶은 너무나 여유롭습니다. 기상-밥-일과-밥-일과-체단-밥-휴식-취침의 루틴인데, 진짜 웬만한 공무원보다 여유롭습니다. 심지어 가장 흔한 전투 병과의 경우 일과 때 할 일 없으면 그냥 쉽니다. 일 있을 때 불러서 일을 시키는 겁니다. 지휘관의 재량이지만 일 없으면 쉬어야지 하는 지휘관의 밑에서라면 어려울 일이 훈련이나 진지 공사 같은 특별한 시즌 말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 물론 일 없으면 일을 만들어 일을 시키는 간부들이 매우 많긴 합니다.
정비병이 힘든 점이 여기서 나타납니다. 일과 시간 때 남들 쉬는 날에 쉬기는 커녕 빡세게 일하는 날이 너무 많습니다. 일과 시간 꽉 채워서 일을 해도 일손이 부족합니다. 일과 시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합니다. 여름엔 미친듯이 덥고 겨울엔 미친듯이 춥습니다.
일과 중엔 차량 점검, 정비 등을 진행합니다. 정비에는 단계가 있어, 조종수 및 승무원들이 진행하는 단계가 있고, 그들의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중대 정비 인력으로 넘어갑니다. 중대 정비병 및 정비관(혹은 반장)에 의한 정비가 진행됩니다. 거기서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대대급, 창급 정비로 넘어갑니다. 아무튼, 조종수들에게 이거이거 해라 오더를 내리고, 문제가 있는 차량은 고치고. 간단합니다. 기름이 샌다? 어디 커플링에서 새는지 확인하고, 정비병 수준에서 해결이 되면 해결하고 안되면 정비관에게 보고해서 같이 고칩니다. 부품이 흔들린다, 엔진 소리가 이상하다, 문이 제대로 안닫힌다 등.... 카센터 지원인 느낌. 단순히 일이 많을 뿐입니다.
이래놓고 훈련 때 행군을 안한다? 헛소리입니다. 그냥 K2 들고 행군합니다. 인력 부족한 부대는 보직 무관하게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시킵니다. 저는 일과가 힘들고 훈련 땐 꿀 빠는 편인데, 어떤 부대는 훈련때도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정비병은 몸이 쉽게 더러워집니다. 정비복이라는 걸 주긴 해서 다행이긴 하다만... 기름때가 묻는 건 당연한데, 기름에 아예 손이 적셔지는 일도 많습니다. 아물론 좁아터진 차량 안에 들어가서 기름이나 흙먼지 등도 많이 닦아내야 합니다.
다칠 일도 많습니다. 차고가 높고, 강철인데 튀어나와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부딪혀 다치고 떨어져 다치고 그렇습니다.
일과 끝나고 생활관에 들어가보면 전투병과 전우들이 에어컨 쐬면서 아이스크림 쪽쪽 빨고 있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보직입니다.
진리의 부대바이부대인지라, 저 같은 경우 일 잘하는 정비병에게는 일을 많이 맡기는지라 유독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병사들을 아예 믿지 않는 정비관이라면 정비병에게 공구 시다만 시킬 수 있습니다. 정비 중 "16 15 가져와"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호다닥 달려가 공구를 찾아 가져다 드리는 게 일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부대는 나름 살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반기 동기 중에 그런 애들이 몇몇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웃긴 게, 힘들긴 힘든데 적응하고 나니까는 보직 변경 시켜주면 저는 안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재밌어서 기계교에서 버틴 것도 사실이고, 여기서도 정비가 아직은 지루할 정도는 아닙니다. 조종수들, 정비병들끼리 모여 "아 그때 퇴교할 걸~~" 라며 한탄하는 게 일상이긴 합니다만....
참고로 장갑차 조종. 조종 자체는 재밌습니다. 조종수의 일과도 마찬가지로 빡세서 그렇지. 그냥 기갑 병과는 피하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결론은 뭐냐. 검색 잘 하시고 본인이 원해서 장갑자 조종수 및 정비병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할 만한 보직이라 무조건 하지마라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쟁률 낮아서 바로 입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보직입니다. 그런식으로면 크게 후회하지 않을까...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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