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군인을 제외한 현역 군인들에게는 군대가 아무 의미 없는 시간 버리기라고 느껴지곤 합니다. 이에 군 내부에서도 그렇고 요즘 사회 풍조도 그렇고 뭐라도 얻어서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시간으로 활용해야만 한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필자도 그런 생각을 하던 사람이었기에 공부 계획까지 짜면서 군대에서 공부할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마냥 잘 안된다는 걸 요즘 느낍니다.
필자는 현재 군 생활 6개월된 짬찌(?)로서, 미적분학(복습), 수리통계학, 자구&알골, 임베디드, 네트워크 등을 공부했거나 공부하고 있습니다. 모션캡쳐 쪽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에 비추어 번 군대에서 자기 개발, 성장, 공부 등이 어려운 이유를 나열해보겠습니다.
근무
군대에는 "근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어떤 회사나 기관에서 일하면 근무라고 표현을 많이 하곤 합니다.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듯 일과 받고 퇴근하듯 끝나면 그것이 근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육군에서의 표현은 다릅니다.(애초에 출근, 퇴근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습니다. 공군에서는 쓰던데..)
주간에 08:30 ~ 16:00 시간대에 보직에 따른 주어진 임무를 진행하는 것은 "일과"라고 합니다.근무는 일과가 아닌 "정기적"인 형태의 일입니다. 보통 경계 작전이 포함됩니다.
가령, 매일매일 6명이 1시간 30분씩 밤에 깨어있어야 하는 불침번이 있습니다. 불침번은 유동 병력을 통제하고 파악하며 특이사항 발생시 당직 계통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과학화 경계인 CCTV 경계 근무는 대충 말하면 CCTV 모니터링인데, 24시간 멈추지 않는 근무이며 여러 사람이 로테이션을 돕니다.
부대의 출입문을 관리하는 위병소 초소 근무. 부대를 출입하는 "모든" 인원을 기록, 통제하며 역시나 24시간 멈추지 않는 근무입니다.
외에도 이곳에 적지 않은 수많은 근무가 있으며, 부대원들 사이에서 로테이션이 돕니다.
야간 근무는 존재 자체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만, 특히나 00~02시 사이에 시작하는 애매한 시간대 근무의 경우에는 그 날 연등 신청하기도 두려워 공부를 못하게 됩니다.
주간에 17:30 ~ 21:00 사이에 근무가 있다면 개인 정비 시간임에도 놀거나 공부하지 못하며 근무를 서야 합니다.
부대 by 부대이기도 한데, 보통 평범한 사단 예하 평범한 여단 예하 평범한 대대의 경우 인원이 충분히 있어 사흘에 한 번 근무를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독립 여단(사단 예하가 아닌 경우)들이 사람이 적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는 적지 않겠지만, 평범한 부대에 비해 상당히 적은 수의 인원으로 비슷한 양의 근무를 소화해내야 하므로 특히나 공부하기거 더 어렵습니다.
잡일
근무랑 비슷한 맥락인데, 식당 청소와 같이 대대 안에서 중대 단위로 로테이션이 돌거나, 중대 안에서 소대 단위로 로테이션이 도는 일들이 있습니다. 근무처럼 주야간에 "할 일"이 생기는 것이며 당연히 이는 개인 정비 시간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피로도
근무에서도 이어지기도 하다만 일과에서도 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필자는 정비병으로 일과가 힘든 편인지라 피로도가 많이 쌓입니다. 17:30에 핸드폰 딱 받는 순간 뭔가 힘이 주욱 빠지는 기분이 듭니다. 하루가 드디어 끝났다... 그런 느낌? 예전에 군인이 꽤나 여유롭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시간적으로는 여유로운 게 맞지만 의외로 피로도는 많이 쌓이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아, 16:00~17:30에 전투체력단련이라고 의무적으로 운동을 해야하는데, 이것도 당연히 피로도에 기여합니다.
보상 심리
지금까지 나열한 것만 봐도 쉬는 시간이 매우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군인들끼리는 "폰손실"이라는 말을 쓰며 귀한 개인 정비 시간에 폰 쓰면서 노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사실 연등 그거 하루 2시간 밖에 못합니다. 그것도 가장 피곤할 때라서 컨디션 좋지 못할 때에 하는 겁니다. 연등만으로는 그리 유의미한 성과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결국 개인 정비 시간을 할애하면서 자기 개발을 해야하는데, "아 오늘 일과 빡세게 했는데...", "아 이따 근무 있는데..." 이런 생각들이 보상 심리를 불러일으키면서 휴식의 욕구를 부풀립니다.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필자도 어디 가서 (적어도 공부에 한해서는) 열심히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군 입대 전에 개인 정비 시간이나 연등 시간 잘 활용해서 공부하면 된다, 안되는 건 의지 문제 아닌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같이 구르다가 저녁이 되면 모든 의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게 군대인 것 같습니다....
부대 일정
역시 부대 by 부대입니다만, 바쁜 부대는 무언가를 하기 쉽지 않습니다. 흐름이 끊기기 때문입니다. "아 다음주에 훈련인데 좀 쉬자"라는 생각이 들기 쉽상입니다. 매달 훈련이라도 있다면 달마다 2주 정도는 공부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보상 심리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내 공부만 있는 게 아니다
또 부바부인데, 병개인훈련진급평가라고... 적어도 필자의 부대는 이 부분을 많이 강조합니다. 가끔 연등 시간에도 화생방 혹은 전투부상자처치, 주특기 등의 교범을 들고 공부를 합니다. 못하면 진급 누락이라서 이런 걸 해야 하는 시기가 몇 번 옵니다. 내 공부 하기도 바쁜데 군대 공부도 해야 하니 스트레스입니다. 특기병 같은 특수 보직은 주특기 시험도 마냥 쉽지 않아서 이 부분이 더 힘듭니다.
지금까지 주저리주저리 뭘 많이 썼습니다. 절대로 제 군생활의 불만을 표출하는 건 아니고(?),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군 내에서 자기 개발이 마냥 쉽지 않다는 걸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혹여 군 내에서 자기 개발을 잘 안하는 주변인이 있다면 해보라고 권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주고 응원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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