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유명한 군 창업경진대회에 참여하고, 창의상을 수상했다. 이에 후기를 작성해보려 한다.
왜 참여하게 되었는가?
휴가 따려고 참가했다. 어느때와 같이 심심한 군 생활 중, 행정계원 컴퓨터로 본 여단 페이지에서 육군창업경진대회에 대한 공지를 보았다. 요즘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어 창업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약 스물 한두 살까지는 창업에 대한 의지가 불탔던 나이기에(즉, 창업을 위한 공부를 열심히 했었기에) 자신 좀 있었고, 포상도 준다 하니 참여하게 되었다.
창의상이란?
일단 군인으로서 상장이란 것은 상격이 매우 중요하다. 상을 수여하는 사람의 계급 말이다. 대대장급(중령)이냐, 여단장급(대령 혹은 준장)이냐, 사단장급이냐(소장) 등등... 창의상은 육군인사사령부의 사령관이 수여하는 상장이었다. 장성급 장교의 축소로 인해 인사사령관은 소장이 보직되므로, 창의상은 대략 사단장급 상장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대대 인사과 심의로부터 나는 4일의 포상휴가를 받았다.
부연 설명을 더하자면, 대략 오백 몇 십 팀이 예선에 참가하였고 그 중 25개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다. 25개 팀은 창의상이 확정적 수여되며, 그 중 본선 결과로 대상이나 장려상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나는 장려상도 받지 못했다. 이 창의상이란 것은 수단 내지는 도구였다. 육군 입장에서는 장병들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포상을 내걸어야 했고, 예선만 통과하면 포상을 준다고 예고했었다. 그리고 군에서 포상 휴가란 것은 상장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었으므로 포상휴가를 지급하기 위해 상장이 필요했다. 그래서 예선 통과 25개팀 모두에게 창의상을 확정적으로 수여한 것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살면서 받아보기도 힘든 투스타(소장) 상장도 받고 휴가도 4일 낭낭하게 챙겼으니 결과적으로 좋았다^^
대회 진행은 어떻게 했는가?
내용적으로는 솔직히 음. 여럿 창업경진대회에 참여하고, 상도 받아보고, 구경도 해본 나로서 정말 일반적인 창업경진대회랑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냥 창업경진대회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검색해서 대비하는 걸 추천한다. 군 창업경진대회라고 더 특별히 해야하는 건 없었다. 군과 관련되거나 군대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아이템이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형식적으로는, 먼저 두 달 정도의 기간을 주어 예선을 진행한다. 예선은 10페이지 내외의 사업계획서만으로 승부하며, 본선은 PPT와 발표 영상, 그리고 줌을 활용한 5분의 질의응답으로 평가가 진행된다. 장려상 이상의 수상자들은 추후에 수상식을 모여서 진행하며, 창의상 수상자들은 택배를 통해 상장을 전달받았다.
대회를 하면서 불만이었던 점.
음. 편하게 인터넷으로 접수가 가능하고, 그래서 사지방에서 열심히 잘 준비할 수 있었다는 점 빼고는 돌이켜보니 불만이 많이 남았다. 육군창업경진대회에 참여하려는 여러분들은 이를 읽어본 뒤 곰곰히 생각하고 참여해보자.
군대에서마저 팀플을 해야 했다
혼자서 참여하고 싶었는데 무조건 2인 이상 참여가 원칙이었다. 나는 결국 사람을 모아 4인팀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대학에서도 수없이 맛본 팀플의 쓴 맛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나도 개인정비가 있고, 나도 취침 여건이란 게 있지만, 이를 포기하고 대회 준비를 열심히 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팀원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두자.
진리의 부바부, 여건의 차이
육군창업경진대회에서는 대회 준비 여건의 차이를 실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어지는 다른 군 AI 대회도 참여했었는데 그 대회에서 여건의 차이를 크게 실감했다. 해당 대회에는 참여자끼리 소통할 수 있는 게시판이 있었고, 나는 참담한 현실을 목도했다.
대회 참여를 위해 사단장이 나서서 숙소를 만들어주고, 타 사단이면 협조를 구해 합숙하며 대회를 준비하도록 지원해주고, 대대장이 일과를 빼주고... 우리 대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 대대가 억압적인 분위기를 가진 것이 아니다(사실 요청을 해 본 것은 아닌데 해도 안될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부대 분위기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부여받은 보직의 일과를 수행하며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게 먼저 아닌가. 나는 장갑차정비병으로서 매일 일과 시간에는 온갖 유류와 각종 부품, 공구를 다루며 나라 지키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군 생활을 보내왔다. 근데 다른 부대에서는 대회를 위해 지휘관이 나서서 일과를 빼준단다. 배보다 배꼽이 크게 된 것이 아닌지.... 부대 by 부대를 여실히 체감했다. 참고로 그 AI 대회는 코딩테스트 예선을 통과했음에도 내 실력을 떠나서 여건의 격차를 느껴 주최측과 얘기하여 대회 지속 참여를 포기했다.
AI대회의 이야기였지만, 이러한 격차가 창업경진대회에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여러분의 부대 분위기와 과거 전례를 잘 알아보고 참여하도록 하자. 누군가는 여건 보장 받을 거 다 받아가면서 참여하고 있을 수 있다. 경쟁 게임에서 여건 차이에 대한 고민은 진지하게 해야할 것이다. 물론 여건이 좋지 않아도 성과를 내는 건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맞다. 개인적으로 나는 두 달 동안 매일 일과 할 거 다 하고 체력단련 다 하고나서 오직 개인정비 시간과 연등 시간, 주말개인정비 시간에만 사지방을 이용할 수 있었고, 휴식을 포기하고 그 시간들을 모두 태워가며 참여했다. 결국 상은 타냈지만,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대 안에서 그것보다 적은 노력으로 그보다 더 많은 포상휴가를 얻어낼 기회가 충분히 많다.
휴가 심의
대회 주최측에서 포상 휴가 심의를 대대에 위임했다. 포상증을 주지 않고 상장만 준다. 대대장 혹은 대대 인사과 마음대로 휴가 일수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상을 받고 어떤 사람은 이틀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7일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이 또 그 당시 대대 여건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분위기에 따라서도, 지휘관의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사단장급 상장은 4~5일의 포상을 준다는 대대 인사과 지침에 알맞게 4일을 받았다(이왕 줄 거면 5일 주지 ㄲㅂ). 검색해보니 혹자는 2일을 받았다고도 하더라.
늦은 일 처리
본선은 10월에 진행했고, 대회 결과는 11월 초에 공개되었다. 상은 12월 중순이 되어서야 대대에 택배로 도착했고, 휴가 심의를 거쳐 내가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1월 중순이었다. 일처리가 상당히 늦었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일상인 일이니 놀랍지 않았다.
불만보다는 특이사항
불만이었다기보다는 되게 신기했던 부분이다. AI 대회에서도 동시에 느꼈던 사항이다. 예선 등등을 통과하고 본선 참여자들이 모인 곳을 보면 참가자들의 스펙이 매우 높다. 학벌? 다들 날아다닌다. 명문대는 기본이요, 중국과 미국의 명문대 출신의 용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군 대회라고 무시하지 말자. 사회의 능력남들이 잠시 묶여있는 18개월동안 할 게 없으니 이런 거라도 참여하게 된다. 참고로 우리 팀은 서울대, 북경대(의대), 한양대, 한서대(연구경력有)의 4명 팀으로 참여했었다.
결론
결과만 보면 포상은 달달했다. 그러나 다음 대회에는 딱히 참여할 계획이 없다. 그걸 떠나서 다른 군 대회에조차 참여할 생각이 없다.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사라져간 내 개인정비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남들은 개인정비 손해도 적게 하면서 부대에서 착실히 포상을 쌓아간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하거나 운동을 더 할 것 같았다. 대회는 휴가라는 1차원적인 측면에서 효율이 떨어졌다. 아 물론 참모총장상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휴가를 훨씬 더 많이 줄테니까.
휴가를 떠나서 커리어적인 측면을 보았을 때도 나는 별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군 창업경진대회 수상이 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받을지에 대해 고민해보니 (그것이 과소평가일 수 있지만) 그런 결론이 나왔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가치 판단의 이야기이다. 나는 군 생활이 나름 체질에 맞아 개인정비 및 연등 시간에 매일 공부를 하고 있고, 그것이 만족스럽다. 그렇기에 개인정비를 태워가며 참여하는 대회 참여 경험이 좋지 못한 것이다. 나같지 않은 사람들은 해볼 법도 할 것이다.
'일상 > 군대라이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대에서 자기 개발, 성장, 공부 등이 어려운 이유 (0) | 2022.07.26 |
---|---|
장갑차 정비병이 뭔가요? (0) | 2022.07.09 |
공병은 Stack이다! (0) | 2022.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