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사람이 이를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어쩌다 이런 책을 골라 읽게 되었느냐고. 당연히(?) 표지도 제목도 내용도 내 취향이 아닌 이 책은, 군대에서 휴가 나간 도중 학과 선배인 친한 형한테 추천 받아 읽게 되었다. 밥 먹고 카페도 가고 시간이 남아서 알라딘 중고 서점에 놀러 갔는데, 베스트 셀러 구역에 있는 걸 추천 받았다. 내가 잘 읽을 수 있을까, 중간에 재미 없어 하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끝까지, 나름 재밌게 읽었다. 그래서 이 책에 관해 조금 적어보려 한다.
어떤 책인가?
논어, 맹자, 한비자 등의 중국 고전 문헌에 대한 저자의 독법을 소개한다. 단순히 소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당대 사회상 곁들여 설명하기도 하고, 과거의 사상을 현대로 끌어와 현대 사회를 조명, 미래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책이다.
주로 어떤 내용이 있는가?
주역이라는 매우 오래된 문헌부터 (비교적) 최근의 양명학까지 문헌마다 하나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매 챕터마다 원문 그 자체 혹은 과거의 학자가 작성한 해설의 일부를 가져와 해당 사상을 쉽게 설명해준다(저자만의 독법을 알려준다는 건, 결국 문헌을 해설해준다는 말과 같다). 그 과정에서 당대 시대상을 함께 설명하여 어떤 사상이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고,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적는 짧은 긍정적인 평가
동양사는 커녕 역사에도 무지한 나로서는 일단 소개된 사상들을 처음 만나 친숙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애초에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그 과거의 동양 사상이라는 컨셉 자체를 이해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개별 사상들에 대한 핵심 포인트가 잘 설명되어 있었다. 게다가 시대상을 같이 알려주기에 중국사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게되어 좋았다.
문헌 별 짧은 감상
주역
주역은 솔직히 괜스레 어렵기만 했다. 어떤 고사를 듣는 느낌? 속담집같기도 했다. 괘사의 내용은 재밌게 읽었다. 그래도 많은 내용이 생략되었고, 책 자체의 본질에서도 크게 벗어나는 느낌이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논어
매우 유명한 문헌이지만, 평소에는 인의예지, 좋은 군주가 되는 법, 어진 사람으로 사는 법, 등에 대해 공자의 말이 담겨 있는 책이라 이해하고 있었다. 크게 틀리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세상과 사람과 국가에 대한 공자의 고찰과 주장, 선언 등이 담겨 있었다. 크게 임팩트 있지는 않았다.
맹자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변화를 준 사상이다. 특이한 것은 민본사상과 성선설이었다. 민중이 원하면 왕도 응당 바꿀 수 있다는 민본사상이 꽤나 진보적이어서 놀랐다. 그리고 맹자의 성선설은 사회에서 알려진 바와 많이 달랐다. 맹자는 단순히 사람은 날 때부터 선하다는 인간 자체에 대한 규정을 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로부터 선한 본성을 인간이 받아 좋은 세상과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종의 이상향을 주장한 것이다. 애초에 맹자의 성선설 부분은 논리적인 비약이 매우 심했다. 후술하겠지만 성악설 역시 지금 잘 알려진 바와 다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이 조금 바뀌었던 부분에서 이 파트가 재밌었다.
노자
무협지에서 지겹도록 보는 자연과 도에 대한 사상이다. 도가 계통이라는 것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이 아니라 모든 것의 근원이라는 최상의 가치로 설정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추구한 점이 재밌었다. 실상과 허상, 유명과 무명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언어의 한계를 지적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장자
노자에서 '도'라는 개념을 빼고 상대주의적 관점을 추가하여 계승한 사상이다. 노자와 장자가 합쳐서 노장사상으로 불리는데, 기본적으로 '인위'의 개념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나는 노자보다는 장자가 더 재밌었다. 일단 정저지와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내 정저지와에 대한 이미지는 '좁은 곳 안에서 자기 수준이 그리 대단치 않음에도 자기 잘난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저지와라는 말 자체의 출전인 장자에서 그러한 말을 하게 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많은 학자들이 유학이나 노장 사상 등의 한정된 기반에서만 해결법을 제시하는 게 장자는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물 안 개구리라는 이야기를 하며 장자 사상을 전개하는 데서 정저지와가 출발했다.
아무튼 장자는 자유주의 철학인데, 인간 삶의 궁극적 자유를 추구한다. 정신의 자유라는 높은 차원의 자유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권력이라는 인위의 힘을 부정하는 근본주의적 사상이기도 했다. 내게 인상 깊었던 말 몇 가지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나 "인위로써 자연을 멸하지 말라" 등이다.
여기서 느꼈던 게 몇 가지 있다. 먼저 장자 사상은 반 기계적, 체제 부정적 사상을 포함한다. 이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었다. 장자는 당시대를, 저자는 현시대를 자본의 논리에 의하여 기계가 사람보다 우선되는 시대라고 평했다. 동시에 사람이 기계에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지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나 앞선 근거는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정세의 관점에서는 힘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발생할 수 있지만 나는 늘 자본이 사람을 따라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덧붙이자면 기술 역시도 그러하다). 관련해서 마지막에 후술하겠지만 현 시대상을 편협하게 보는 저자의 관점이 약간은 불편했다.
묵자
묵자는 검소하고 실천적이며, 각박하고 엄격한 사상이라는 이미지였다.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상생의 가치를 주장했다. 공격 전쟁에는 무조건적인 반대를 외치며 방어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니까, 묵자 사상을 계승하는 학파의 학자들이 방어 전쟁에 참여했다는 뜻이다. 춘추 전국 시대에 수많은 전쟁이 있었을 것인데, 그곳에서 방어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묵자 학파는 당연히 군대와 같이 검소, 실천, 엄격 등의 풍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평등주의 사상을 포함한 겸애의 가치는 묵자가 추구하는 세상이 마치 유토피아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다.
순자
다시 돌아온 유가 계통의 학파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사상에서는 하늘에 대한 담론인 천론이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천론은 하늘에 어떻고.. .하는 이야기인데, 본질적으로 세상의 원리에 대한 내용이다. 하늘로부터 어떤 기운이 어디로 가고... 하늘의 뜻이 어떻고... 그런 말을 순자는 부정했다. 하늘은 그저 물리적인 하늘일 뿐이다. 하늘이 어떻든 사람 스스로의 적극 의지를 통한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대적인 생각이기도 하니 순자 챕터를 읽으면서 더 정이 갔다.
맹자와 마찬가지로 순자의 성악설도 알려진 것과 달랐다. 순자 역시 사람 자체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해 본성을 규정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 의지에 대한 행동을 강조했기에 순자 사상에서는 '교육'이 매우 중요한 키워드였다. 결국 교육, 예, 제도 등의 담론을 전개하면서 '사람은 교육해야 올바르게 된다'고 주장하는 과정의 일부분에서 성악설이 나온 것이었다. 애초에 당시 일반적인 패러다임은 하늘로부터 인간이 본성을 받는다는 것이었는데, 하늘은 그저 물리적 하늘일 뿐이라는 순자의 천론에서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했을 것이다.
한비자의 법가
춘추전국시대의 통일사상이다.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소개한 사상들은 대체로 농본적 질서를 추구하며 과거의 복고적 모델을 이상으로 삼았다. 반면 법가는 미래를 바라보는 사관이며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현실성을 추구했다. 지금까지의 사상 중 가장 현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강제력을 가진 형벌과 공개성을 가진 법을 제시하면서 법치주의를 완성시켰다. 특히 권력의 자의성을 제거하고 법을 왕보다 높은 곳에 올려 왕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왕권의 범위를 제한하기도 하는 '법의 공개성' 부분이 재밌었다. 결국 법치주의를 통한 중앙집권적 권력이 시대 통일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불교
일단 불교는 다소 어려운 사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돈오, 무한 등의 내용이 많았다. 사물과 생명에의 엄청난 의미부여를 함과 동시에 무상함을 주장하는 모순이 있었으며, 그러한 무상함 측면에서 무정부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무책임한 사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 불교 파트에서는 사상 내지는 종교가 통치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내용이 많아서 재밌었다. 이어서 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회질서를 재건하려는 신유학이 제시되었는데, 이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다시, 뒤에 적는 느낀 점
철학이든 사상이든 그것에는 시대가 크게 반영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에 소개된 사상들은 늘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인들의 담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읽다가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상이 하늘 - 사람 - 국가에 대한 비슷한 패러다임의 논의를 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통치 방향성을 항상 포함하고 있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이 사회와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인들의 담론이며, 실제로 그러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에 아쉬운 점
말만 관계론?: 저자가 처음에 주장하기를 이 책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바라보겠다고 했다. 애초에 문헌의 일부를 발췌할 때부터 관계론 위주로 발문했을 수도 있지만, 다 읽은 입장에서 아직도 관계론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관련한 내용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편협한 관점: 책에는 진보적 성향이 다분하다. 계속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한다. 그러나 소개하는 사상을 적용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솔루션 제시가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그런 내용을 담으면 책의 주제를 벗어나기도 하고 정치성을 가지기도 할 것이기에 그런 내용을 일부러 작성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든, 대부분의 챕터가 끝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만으로 끝나기에 다소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총평
관련 분야 어느것에도 비전문인 나로서도 읽기에 꽤 수월했다. 물론 한문 실력이 요구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다 무시하고 한글만 읽었음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글의 퀄리티가 좋으며, 가장 중요한 사상에 대한 설명이 쉽게 잘 되어 있었다. 꽤 만족스럽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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